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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활 하늘정거장교회 목사
며칠 전 친지의 장례식장에 갔을 때도 익숙한 장면을 다시 보았습니다. 입구에서 복도까지 화환이 길게 늘어서 있었고, 빈소보다 화환이 더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때 이런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이 장례는 과연 고인을 위한 자리인가, 유가족을 위로하는 자리인가, 아니면 살아 있는 사람들의 체면과 관계를 보여 주는 자리인가.’
저는 화환 자체를 죄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애도의 뜻을 표현하려는 마음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화환 문화는 너무 쉽게 과시와 경쟁, 허례와 낭비로 흘러갑니다. 누가 더 크고 좋은 화환을 보냈는지, 어느 오션파라다이스예시 기관과 단체 이름이 적혀 있는지, 화환이 얼마나 많이 들어왔는지가 은근한 평가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안타깝게도 기독교인들도 이 문제에서 세상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장례는 세상 장례와 같아서는 안 됩니다. 기독교 장례는 단지 슬픔의 자리가 아니라, 부활의 소망 가운데 애도하는 자리입니다. 고인을 높이는 자리도 아니고 유 릴게임모바일 가족의 사회적 위치를 드러내는 자리도 아니며, 조문객의 이름을 과시하는 자리도 아닙니다. 그 중심은 오직 하나님 앞에서 죽음을 정직하게 직면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위로와 소망을 붙드는 데 있어야 합니다.
픽사베이
릴게임손오공 화환 문화가 문제인 이유는 분명합니다. 첫째 장례의 중심을 흐리기 때문입니다. 장례의 중심은 인생의 유한함을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선 인간의 실존을 바라보며,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위로를 찾는 데 있습니다. 그러나 화환 문화는 장례의 시선을 복음에서 장식으로, 위로에서 외형으로 옮겨 가기 쉽습니다.
둘째 사람의 허영심을 자극합니다. 바다이야기오락실 장례식장에서 화환은 단순한 애도의 표시로 끝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누가 보냈는지, 얼마나 많이 왔는지, 어떤 기관장의 이름이 적혀 있는지가 사회적 자산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슬픔의 자리에서조차 사람들의 시선을 더 의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 낭비가 큽니다. 대부분 화환은 잠시 전시되었다가 처분됩니다. 비용은 적지 않은데 실제 유익은 릴게임뜻 짧습니다. 더 큰 문제는 그 물질이 다른 곳에 쓰일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가난한 성도, 병든 이웃, 홀로 사는 노인, 미자립 교회에 실질적 도움으로 흘러갈 수 있는 돈이 외형적 장식으로 사라지는 것입니다.
넷째 이런 문화는 기독교 정신과 잘 맞지 않습니다. 성경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행위를 경계하며 외식과 과시를 책망합니다. 하나님은 사람 앞에 드러나는 형식보다 하나님 앞에서의 진실한 중심을 보십니다. 죽음 앞에서조차 체면과 장식을 앞세운다면 우리는 세상과 다를 바 없는 문화를 반복하는 셈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요. 화환 대신 쌀이나 생필품을 보내 장례 후 어려운 이웃에게 전달할 수 있습니다. 조의금 일부를 고인 이름으로 하여 구제금으로 사용하는 것도 의미 있는 선택입니다. 교회는 장례 내규를 통해 화환보다 실질적 위로와 구제를 우선한다는 원칙을 세울 수 있습니다. 부고 문자나 빈소에 ‘화환은 정중히 사양하며, 그 뜻을 어려운 이웃을 위한 나눔으로 함께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는 안내를 덧붙이는 것도 좋은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은 화환도 애도의 표현인데 왜 문제 삼느냐고 묻습니다. 맞습니다. 문제는 꽃 자체가 아니라 그 꽃을 둘러싼 문화입니다. 애도가 과시의 수단이 되고 슬픔의 자리가 체면의 무대가 될 때, 기독교인은 그것이 정말 복음에 합당한지 물어야 합니다. 결국 장례 문화는 우리가 죽음과 돈과 체면, 그리고 이웃 사랑을 어떻게 이해하는지를 드러냅니다.
기독교 장례는 마지막까지 사랑을 증언해야 합니다. 화환이 가득한 빈소보다 슬픔 속에서도 실제 사랑이 흘러가는 장례가 더 복음적입니다. 과시 대신 구제를 택하고 외형 대신 경건과 사랑을 붙드는 장례야말로 하나님 나라를 조용히 증언하는 거룩한 장례가 될 것입니다.
결혼식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덧붙이고 싶습니다. 축복의 자리 역시 체면과 과시가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이웃과 사랑을 나누는 복음적 문화로 바뀌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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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친지의 장례식장에 갔을 때도 익숙한 장면을 다시 보았습니다. 입구에서 복도까지 화환이 길게 늘어서 있었고, 빈소보다 화환이 더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때 이런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이 장례는 과연 고인을 위한 자리인가, 유가족을 위로하는 자리인가, 아니면 살아 있는 사람들의 체면과 관계를 보여 주는 자리인가.’
저는 화환 자체를 죄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애도의 뜻을 표현하려는 마음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화환 문화는 너무 쉽게 과시와 경쟁, 허례와 낭비로 흘러갑니다. 누가 더 크고 좋은 화환을 보냈는지, 어느 오션파라다이스예시 기관과 단체 이름이 적혀 있는지, 화환이 얼마나 많이 들어왔는지가 은근한 평가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안타깝게도 기독교인들도 이 문제에서 세상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장례는 세상 장례와 같아서는 안 됩니다. 기독교 장례는 단지 슬픔의 자리가 아니라, 부활의 소망 가운데 애도하는 자리입니다. 고인을 높이는 자리도 아니고 유 릴게임모바일 가족의 사회적 위치를 드러내는 자리도 아니며, 조문객의 이름을 과시하는 자리도 아닙니다. 그 중심은 오직 하나님 앞에서 죽음을 정직하게 직면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위로와 소망을 붙드는 데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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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낭비가 큽니다. 대부분 화환은 잠시 전시되었다가 처분됩니다. 비용은 적지 않은데 실제 유익은 릴게임뜻 짧습니다. 더 큰 문제는 그 물질이 다른 곳에 쓰일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가난한 성도, 병든 이웃, 홀로 사는 노인, 미자립 교회에 실질적 도움으로 흘러갈 수 있는 돈이 외형적 장식으로 사라지는 것입니다.
넷째 이런 문화는 기독교 정신과 잘 맞지 않습니다. 성경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행위를 경계하며 외식과 과시를 책망합니다. 하나님은 사람 앞에 드러나는 형식보다 하나님 앞에서의 진실한 중심을 보십니다. 죽음 앞에서조차 체면과 장식을 앞세운다면 우리는 세상과 다를 바 없는 문화를 반복하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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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분은 화환도 애도의 표현인데 왜 문제 삼느냐고 묻습니다. 맞습니다. 문제는 꽃 자체가 아니라 그 꽃을 둘러싼 문화입니다. 애도가 과시의 수단이 되고 슬픔의 자리가 체면의 무대가 될 때, 기독교인은 그것이 정말 복음에 합당한지 물어야 합니다. 결국 장례 문화는 우리가 죽음과 돈과 체면, 그리고 이웃 사랑을 어떻게 이해하는지를 드러냅니다.
기독교 장례는 마지막까지 사랑을 증언해야 합니다. 화환이 가득한 빈소보다 슬픔 속에서도 실제 사랑이 흘러가는 장례가 더 복음적입니다. 과시 대신 구제를 택하고 외형 대신 경건과 사랑을 붙드는 장례야말로 하나님 나라를 조용히 증언하는 거룩한 장례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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