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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짧은 지식과 정보 부족으로 그렇게 하지 못해 늘 아쉽게 생각하고 있다. 향산(香山) 윤상태(尹相泰, 1982~1942)도 그런 사람의 한 분이었다. 대구시가 1977년에 발행한 『달구벌:대구의 역사·경관·문화재』에 의하면 "1915년 1월15일 오리지널골드몽 안일암(현, 안일사)에서 일단의 인사들이 시회(詩會)를 가장하여 독립운동단체인 「조선국권회복단 중앙총부」(朝鮮國權回復團中央摠部)를 결성했다.
대구는 지방의 한 도시일 뿐인데 전국을 아우르는 이름을 붙인 것도 예사롭지 아니한데 조직도 정부의 내각과 비슷하고 특히, 결사 대장이란 부서를 만든 것을 보면 비장하기까지 했다 오리지널바다이야기 .
향산이 독립운동을 모의했던 첨운재. 향산은 20대에 거제군수가 되었으나 독립운동이란 가시밭길을 선택했다. 1년6개월간 옥고를 치른 향산은 1942년에 순국했다.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1991년).
오션파라다이스다운로드 즉 "통령(統領) 윤상태, 외교부장 서상일, 교통부장 이시영(박영모), 기밀부장 홍주일, 문서부장 이영국(서병룡), 유세부장 정순영, 권유부장 김규, 결사대장 황병기, 역원 이형재, 김기성, 마산지부장 안곽 등이며 이들은 만주, 러시아 등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단체와 연계하여 연락은 서상일, 이시영, 박영모 등이 만주를 왕래하며 취했으며 1919년 오리지널바다이야기 3월 윤상태는 창원에서 주민 1천여 명을 동원해 주재소(현, 파출소)를 습격하려다가 미리 연락받는 일본 헌병대와 부딪혀 많은 희생자를 내게 되었다." 라고 하였다.
이들 중에서 특히, 윤상태가 눈길을 끌었다. 회장이나 대표라는 직함을 놔두고 통령(統領)이라는 직위를 맡은 분이자 대구가 아닌 창원에서 독립운동을 한 사람을 대구가 기리는 것 야마토릴게임 이 의아했기 때문이다. 다만 그가 월배 사람이며 달비골에 그와 관련된 유적이 있다는 것 이외 다른 것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매일신문(2018년 5월 18일)의 신간 소개 편에 『지나간 것은 다 그립고 눈물겹다』(저자 윤이조)를 읽고 오래 잊혀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조두진 기자의 서평은 필자를 더욱 흥분하게 했다.
애국지사 향산 윤상태는 일제 치하 대구 안일암에서 결성된 독립운동단체 「조선국권회복단 중앙총부」의 통령으로 항일운동과 상해임시정부에 군자금을 보내는 역할 등을 했다.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됐다. 이정웅 제공
이화여대 약대를 나온 저자 윤이조는 윤상태의 손녀로 독립운동을 하다가 세상을 떠난 할아버지의 일화와 어린 시절을 보냈던 월배지역의 이야기, 가족에 대한 추억을 기리고 있으며 윤상태의 독립운동 관련 기록을 부록으로 정리해 두었다고 했기 때문이다. 출판사에 전화를 했더니 아직 시판에 들어가지 않아 입금하면 우편으로 보내주겠다고 했다.
『월배향토지』(월배향토지편찬위원회, 2006)에서 우선 향산(香山)에 대한 기록을 다시 찾아보았다. 경북 고령의 일신학교에 이어 월배에서 덕산학교를 설립하여 인재 양성을 한 이외 달비골의 첨운재(=송석헌, 松石軒)에서 동지들과 국권 회복을 모의했으며 '월배육경'(月背六景)이란 시를 남겼다.
송석헌을 찾았다. 풀을 헤치고 힘겹게 들어서니 현판이 세심정(洗心亭)이었다. 잘못 찾은 것 같아 아쉬움을 뒤로 하고 발길을 돌렸다. 책이 배달되어 몇 쪽을 살펴보니 공교롭게도 당시 정인열 논설위원의 독후감도 수록되어 있었으며 송석헌이 곧 세심정이라는 것을 알았다. 정 위원에게 전화를 걸어 향산의 유허지 송석헌을 가보았다고 했더니 반가워하며 같이 가보자고 했다. 송은석(향토사학자)을 동행해 현장을 다시 찾았다.
저자 윤이조가 어린 시절 자주 놀러 왔으며 그의 기억 속의 큰 바위와 느티나무, 보기 좋게 가지가 굽은 백일홍 두 그루, 돌담, 첨운재(瞻雲齋)와 송석헌(松石軒)이라고 쓰인 현판은 방안에 그대로 있었다. 그러나 연못과 맛있게 따먹었다는 자두나무는 없었으며 다만 앵두가 빨갛게 익어 가고 있었다. 멱을 감고 다슬기를 잡았다는 개울은 앞산 터널 공사로 묻혀버렸다.
정 위원과 일행은 독립운동을 모의했던 이곳이 안내판은 물론 들어갈 길조차 없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사진을 찍고 발길을 돌렸으나 향산의 혼이 깃들어 있는 뜻깊은 곳을 찾아보았다는 점에서 기뻐했다. 이 책을 통해 향산이 통령으로 추대된 것은 거제 군수를 지낸 전력과 남다른 애국심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군수는 상당한 고위직 공무원이다. 을사늑약을 항거하며 사임하지 않았다면 2천석 재산도 보전할 수 있었고 일제로부터 우대를 받아 권력을 누리고, 가족을 건사하며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는 안정된 자리였다.
그런데도 독립운동이란 가시밭길을 선택했으니 응당 통령에 추대될 만하고 또한, 거제에서 군수를 했으니 연고가 있는 창원 일대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기가 훨씬 쉬웠을 것을 생각하니 평소 품고 있었던 의문을 해소할 수 있었다.
향산은 1년 6개월 옥고를 치르고, 상해임시정부에 군자금을 지원하는 한편 장석영, 조긍섭을 도와 파리강화회의에 제출할 독립청원서를 영문으로 번역하게 하고, 거액의 여비를 지원하여 상해임시정부에 전달하도록 하였다. 1942년 일제의 잔혹한 고문 후유증으로 환갑이 되던 그해 순국했다.
이정웅 (사)대구생명의숲 이사장, 전 대구시 녹지과장
심산 김창숙(金昌淑)이 쓴 일화(一和) 최현달(崔鉉達, 전 칠곡·청도군수, 대구 판관 역임, 청구대학 설립자 최해청의 아버지)의 행장에 의하면 일화의 집이 경매로 타인에 넘어 가자 향산이 사서 돌려주었다고 한다. 1991년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손녀 윤이조의 『지나간 것은 다 그립고 눈물겹다』는 그동안 궁금하게 여겼던 향산(香山)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하였다. 향산 그는 갔지만 손수 심은 충절의 상징 배롱나무는 해마다 꽃을 피울 것이다.
이정웅 사)대구생명의숲 이사장, 전 대구시 녹지과장
대구는 뿌리 깊은 도시답게 자랑스러운 인물이 많다. 이분들의 행적을 정리하여 달구벌에 발을 디디고 사는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 귀감(龜鑑)으로 삼게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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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웅 (사)대구생명의숲 이사장, 전 대구시 녹지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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